최근 영화 ‘도가니’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과 동국대 교수 보광스님(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 만났다.

1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10년을 앞두고 만난 현병철 위원장과 보광스님은 “우리나라 인권 의식이 예전보다 높아진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차별과 편견 해소를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인식을 같이했다.

또한 “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사회지도층에서부터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본지가 마련한 기획 ‘지성인의 대담’은 지난 10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현병철 위원장:
종교계는 우리나라 인권 신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권위원회 입장에서 종교계는 ‘동지’나 다름없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불교는 인권 문제에 대해 핵심 철학을 제공하고 있어 천군만마(千軍萬馬)와 같다.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선언이나,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보광스님: 인권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권(佛權)’이다. 부처님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평등사상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치와 이념을 초월해 인간의 존엄성이 최우선 돼야 한다.

현병철 위원장: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정확한 수치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본다. 선진국의 경우 인권 문제는 대부분 일상과 맞물려 돌아간다. 대부분 차별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화 되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직업 현장에서의 차별 사건이 증가하는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 생활하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소한 불만이 문제가 되고 인권침해 사례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결국 평화나 개발 등 우리 사회의 모든 현안들은 인권이 전제되어 있지 않는 한 불안정 할 수밖에 없다. 인권은 일상의 문제이지 이념화 되고 정치 문제화 되어서는 안된다.

차별 없는 세상구현이 부처님 가르침

정치와 이념 초월해 인간존엄성 ‘존중’

보광스님: 국가인권위원회는 형편이 어렵거나 변호사를 살 수 없는 서민층이 전화나 팩스 한 통 으로 보상받고 해결되도록 돕는 ‘친근한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만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변화하면서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지도층부터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관습화된 생각에 따라 말이나 행동을 하다 보면 인권침해가 이뤄진다. 이에 비해 젊은 세대는 인권 교육을 일찍부터 받아 인권에 대한 인식과 개선 의지가 강하다.

현병철 위원장: 좋은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통계를 보면 매년 약 40%가 진정사건이다. 1년에 인권위원회로 약 9000건이 진정사건이며, 위원회 출범이후 누적 건수는 10월말 기준으로 5만7000여 건에 이른다. 최근 2~3년 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

예전에는 경찰이나 교도소 등의 공공기관이나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침해사례가 주류를 이뤘지만 요즘은 직장에서 가장 많은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도층의 인식이 잘 바뀌지 않고 있다. 피부로 느낄 정도다.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성희롱 불감증이 심각해 진정사건이 많이 들어온다.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를 직접 보았다. 영화가 국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인권위 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영화에서 지적한 내용은 인권위원회가 지난 2006년 개선을 권고한 것이다. 2007년 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지적장애인 인권 침해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살펴보니, 눈물 날 정도로 권리 침해를 당했다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이들은 사실 항의할 능력조차 없는 약자들이다. 이 같은 사건이 우리 사회에 발을 못 붙이도록 더욱 힘쓰겠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국 장애인 시설 현황과 운영에 대해 심도 있게 조사했다. 폐쇄 결정을 내린 곳이 5개 시설이었다. 비록 당시 인권위원회 활동은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공감대가 형성돼 다행이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자, 노인, 어린이 등 자신의 아픔을 호소할 능력이 부족한 계층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을 펼치겠다.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제도 철저한 관리와 예방활동을 하겠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때인 만큼 더욱 노력할 것이다.

보광스님: 신도들과 같이 ‘도가니’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좋은 일을 한다는 명목을 겉으로 내세우고 속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기관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도가니’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떠올랐지만, 이 같은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대부분 최선을 다해 시설을 운영하고 있겠지만,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요즘은 10개 가운데 한 가지만 잘못해도 크게 부각되는 시대다. 좋은 일도 묻혀 벼릴 수 있다. 특히 종교계 운영시설은 10가지 모두 다 잘해야 한다.

우리사회 인권수준…“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지도층부터 변화에 따른 인권교육 필히 받아야

현병철 위원장: 조사를 나가면 피 땀 흘려 평생 일궈온 시설인데 왜 이제 와 간섭이냐며 항의하는 기관도 여럿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 사회 기준에는 턱없이 미달이다. 수용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집단 수용은 지양하고 자립 기관을 늘려나가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도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역 사회는 장애인이 우리와 동등한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이웃사랑 정신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하다.

서양은 정신장애 환자들이 입원하는 일수가 짧으면 15일 길면 50일 정도지만, 우리는 평균 233일이다. 10년 동안 병원 밖을 못 나온 사람도 있다. 결국 인식의 문제다. ‘가정에서 돌보기는 소란스러우니까 병원에 맡기는 것이 낫다’, ‘우리 지역에 장애인이 없으면 좋아’ 등의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

보광스님: 최근 문을 연 시설보다는, 수 십 년 전 지역에 뿌리를 내린 기관일수록 문제가 많다. 이런 사회복지기관은 문제를 들춰내기도 전에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공금횡령으로 검찰에 고발해도 기각된 사례도 있다. 시설이 오래됐을수록 집중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현병철 위원장: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인권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유아나 초등학교부터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 인권교육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인권은 아주 어려서부터 생활화하고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체질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권 감수성’이라고도 하는데 인권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보광스님: 어린이나 청소년 교육도 중요하지만 사실 기성세대, 특히 성직자들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불교만 하더라도 인권에 대해 감각이 부족한 것 같다. 얼마 전 모 교구본사에 장애인들이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타고 법당에 들어가려 했고, 사찰에서는 휠체어가 신발이라며 법당 출입을 금지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로 입장이 다를수는 있지만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복지기관을 운영하거나 대중을 교화하는 성직자는 필수적으로 인권교육을 받아야 한다.

현병철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가 권력기관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강제적인 힘을 가하지는 못한다. 권고를 하더라도 기간을 정하고 이행을 촉구하지 못한다.

권고사항을 따르게 하려면 법률 개정이나 정책을 입안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1~2년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자연히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권고 수용률은 거의 95%에 달한다. 권고를 지키지 않았을 때 언론에 공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보광스님: 권고를 내리기까지 조사를 세밀하게 한다. 지하철 편의시설을 만들려면 전체 구조를 뜯어내야 할 때도 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설치한 사찰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본은 장애인을 위해 법당과 마루를 따로 만들고 화장실로 별도로 설치했다.

현병철 위원장: 우리 스스로도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꼼꼼하게 검토하고 신중을 기한다. 현실적인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道)를 닦는 기분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보광스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중생을 성불로 이끄는 디딤돌이다. 오히려 불교라는 이름으로 권위 의식을 갖고 인권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에 돌이켜 봐야 한다. 불교계는 인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나가야 한다.

출가자의 권위로 재가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전통사찰은 장애인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종단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현병철 위원장: 인권은 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항상 경각심을 갖고 끊임없이 살피고 개선해야 한다.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인권은 정치 교육 등 모든 분야와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계는 인권 향상을 본업(本業)으로 삼고 있으므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침을 내리고, 모범을 보여줬으면 한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종교계의 역할이 컸다. 종교계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사진=신재호 기자


■ 보광스님은…

1951년 태어났다. 스님은 1970년 경주 분황사에서 도문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불교대학장, 건학100주년기념사업본부장, 한국정토학회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선학과 교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성남 정토사 주지 등을 맡고 있다.

■ 현병철 위원장은…

1944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원광대 법대를 졸업했다. 20여 년간 한양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양대 법대 학장, 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 한국법학교수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5대 국가인권위원장, 한양사이버대학교 학장을 맡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증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인권전담 독립 국가기관이다. 국제사회의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위한 국민들과 인권시민단체의 노력, 정부의 의지가 함께 어우러져 2001년 11월25일 설립됐다. 준국제.준사법적인 기구로서 정책, 조사.구제, 교육.홍보, 국내외 협력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불교신문 2770호/ 11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