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신앙과 정토신앙의 관련성을 규정하는 학술회의는 미묘한 간극차이를 파고든다. 조영록 동국대 명예교수의 “낙산사 관음신앙은 정토신앙과 연결해야”라는 발표에 <화엄경>에서 강조되는 관음보살과, 미타정토와 <법화경>과의 밀접성에 대한 논평자들의 상호 질의가 쏟아진다. 정토학회 15차 학술회의에서는 연세대 신규탁 교수의 “주불이 아미타불인데 시식의 명칭은 ‘관음시식’이란 의례상의 오류” 문제도 제기됐다.

보광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은 발표에서 대승불교의 본원(本願)사상으로 발전된 관세음보살사상에 대해 “관세음보살의 경우 구원적인 의미가 강조되고, 관자재보살 용어는 지혜의 완성자로서의 역할 강조란 차이가 있다”며, 경전으로는 반야계통의 <반야심경>과 정토계의 <관무량수경>, 법화계의 <묘법연화경>, 화엄계의 60권본 <화엄경>, 밀교계 등 고정성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했다.

특히 “법신보살로서 관자재보살은 이미 성불한 여래의 경지로서 보아 관세음여래라고 하며, 지혜를 완성했기 때문에 자유자재하다고 하여 관자재(觀自在)라고 하고, 미래에 성불하면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라고 하는 수기를 받았다”며, “한국 불교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의 사상의 포괄적 접근을 중심으로 종교 역할과 사회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규정했다.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사상 중심

종교역할 사회활동 전개 바람직

불화를 통해 한국의 관음신앙을 표증한 김정희 교수(원광대)는 “통일신라 초 의상대사에 의해 천수관음 관련경전이 수용된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수관음 신앙이 널리 성행함에 따라 일찍부터 조각과 그림으로 조성돼 망자(亡者)의 복을 추선하는 용도나 사찰에 봉안해 예배 용도로 조성됐다”며, “우리나라 천수관음 신앙이 천수다라니 독송 및 예참에 집중되었고, 중국.일본과 달리 한국은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함께 나타나거나 <법화경> 보문품의 제난장면과 준제관음과 동시 표현 등의 차별성이 나타난다”고 현존 작품이 적은 이유를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천수관음의 밀교적 변화관음 조성으로 친근한 관음 이미지, 선재동자와 함께 표현되는 수월관음의 이미지, 갖가지 어려움에서 중생을 구제해주는 <법화경>의 응신적(應身的) 이미지 등을 투영한 것”이라며 “가장 서민적 기복적 신앙의 대상이자 현실구제라는 서민대중의 염원을 가까운 곳에서 이뤄주는 존재라서 그렇다”고 해석했다.

설화 5편의 관음화소(motif) 분석을 통해 ‘낙산사 관음신앙의 설화적 표출’을 진단한 장정룡 교수(강릉원주대)는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불하여 현세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영험을 얻고자 하는 관음신앙 형태는 어떠한 고난이나 재액에서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반드시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으로 현세적 고난구제와 구고이생(救苦利生)의 관념이 오늘날까지 깊이 성행하고 있다”고 전제, “화소분석에서 오봉산 다섯 산신이 낙산사가 관음성지의 본관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는 화소는 관음신앙의 민중적 기층화”라면서 “문헌과 구전설화를 통해 낙산사가 관음신앙의 진신상주처로서 문화적.역사적.신앙적 전통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중국 동해 관음도량’인 낙산과 보타산을 비교 분석한 조영록 동국대 명예교수는 낙산사 건립의 의상대사가 화엄정토적(華嚴淨土的) 수행승이고 중창자인 범일조사는 법화정토적(法華淨土的) 수행승이었다며 “의상에 비하여 범일은 그 출신과 재당 구법행정 귀국 후의 행적 등 사실관계가 비교적 명확하며, 낙산사 중창의 연기설화 역시 사실에 근접하고 있다”면서 법일조사에 더 비중을 뒀다.

낙산유스호스텔에서 지난 12일 열린 학술회의에서 도업스님(오른쪽 끝)이 논평하고 있다.
또한 아미타정토신앙으로의 전이와 관련, “승려 조신(調信)이 관음기도로 요구하는 바를 달성하여 가정을 이루었지만 현실생활은 역시 고해의 연속인 것을 관음신앙의 한계라 생각했다”며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으로 정토에 왕생하여 그 공덕으로 보살도를 수행하여 부처에 이르려고 정토사를 지었다”고 밝히면서 ‘관음신앙과 정토신앙의 연결성’을 강조했고, 앞서 논평자였던 도업스님(동국대 명예교수)는 말미에 양자간 관계를 “둘이 아니고 하나”로 해석했다.

‘낙산사 복원불사의 과정과 결과’를 분석한 현고스님(향남문화재단 이사장)은 “‘낙산사건물복구 자문위원단’의 주도한 실제 건축에서 “원통보전의 쇄서와 기둥 화계석 등이 계획과는 달리 축조되어 그 결과가 조화롭지 못했고, 빈일루 배치 결정에서 김홍도의 ‘낙산사도’에 일방적으로 의존한 결정이 잘못돼 김유성과 김하종의 ‘낙산사도’와 기타 문헌자료를 통해 재차 고증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낙산사 사지> 등 많은 문헌들이 낙산사원통보전 원장(垣墻) 축조를 1468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기록이며 최소한 13세기 중엽 이전부터 존재했었음을 밝히고, 현재 전면에 설치된 원장이 1953년의 이전의 자료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들어 원장 전체를 강원도 지방문화재로 한 것은 잘못이란 주장도 폈다.

낙산사 주최로 한국정토학회의가 집중 분석한 ‘관음사상과 신앙의 재조명’ 15차 학술회의는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의 사회로 강원도 양양 낙산사 유스호스텔 무설전에서 지난 12일 열렸다.

[불교신문 2818호/ 5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