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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나무아미타불" 염불해도 극락간다(2012, 10, 25 전자불전 세미나, 불교닷컴)

글쓴이 : 정토사 날짜 : 2012-10-26 (금) 11:53 조회 : 3610
10번? ‘한 번만’ 아미타불 念해도 극락 간다
보광 스님, ‘무량수경’ 한글번역 문제 발표서 주장
2012년 10월 25일 (목) 16:12:25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만약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자 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여 십념 정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역죄를 지었거나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제외하겠습니다.”(設我得佛 十方衆生至心‘信樂’ 欲生我國‘乃至十念’ 若不生者不取正覺 唯除五逆誹謗正法) - <무량수경> 가운데.

<정토삼부경>은 염불하는 불자들이 수지독송 하는 경전이다. 이 가운데 <무량수경>은 제18 십념왕생원이 설해진 경전으로 누구나 ‘아미타불’을 염한다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 경전을 근거로 임종할 적에 ‘아미타불’ 칭호를 지극하게 10번 부르면 극락왕생한다고 법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미타불을 반드시 10번 부르지 않아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소장 보광)는 25일 충무로 영상센터에서 ‘한글대장경 번역의 제문제’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에서 보광 스님은 주제발표 ‘<무량수경> 한글번역의 제 문제’를 통해 <무량수경>의 ‘信樂(신락)’과 ‘乃至十念’(내지십념)의 우리말 풀이에 대해 제안했다.

“‘乃至十念’은 ‘열 번 정도’ 번역이 타당”
보광 스님은 “졸저 <정토삼부경>에서 ‘乃至十念(내지십념)’을 ‘십념 정도를’이라고 번역했다. ‘내지’의 의미는 중간에 생략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서 내지 열 번이라고 하므로 두 번일까 세 번일까 가름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 내지 열 번으로 보아서 열 번 정도라고 했다. 열 번 정도면 반드시 열 번이 아니라 일곱 번도 좋고, 아홉 번도 좋다는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서는 한 번만이라도 가능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乃至十念(내지십념)’에 대해 운허 스님은 “열 번만 내 이름을 불러도”라고 해 그 뜻을 10번으로 한정했다. 법정 스님은 “내 이름을 열 번만 불러도”라고 표현했다.

최봉수 교수는 한글대장경 <무량수경>(동국역경원 刊)에서 “10념을 하였음에도 불구라고”라고 번역해 운허ㆍ법정 스님 역과 달리 “내 이름을” 부분을 생략했다. ‘내지’도 생략하고 ‘10념’이라고만 적었다.

청화 스님은 “다만 열 번만 불러도”라고 해 다만 열 번 이라고 번역했다. 열 번이라는 점에서는 운허ㆍ법정 스님과 다를 바가 없다.

보광 스님은 “일본의 대부분 학자들은 ‘내지십념’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면서도 “쓰보이준에이(坪井俊映) 교수는 내지십념을 평생염불로 해석했다. 후지타고타즈(藤田宏達) 박사는 ‘아미타불을 수념(隨念)한다’로 번역했다”고 소개했다.

정리하면, 내지십념은 ①십념 정도 ②열 번만 해도 ③십념을 해도 ④나를 수념함 ⑤평생염불 등으로 번역됐다.

범어 원전에는 ‘내지십념’이라고 할 만한 어구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정신심(淨信心)으로 나를 수념함에(prasannacittamam anusmareyus)’로 돼 있다.

보광 스님은 “내지십념을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열 번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지는 단순히 열 번의 숫자가 아니라 상당한 폭을 두고 하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내지십념은 한 번에서 열 번의 사이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열 번 정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광 스님은 <관무량수경> ‘하품하생’의 ‘구족십념(具足十念)’을 인용하며 “내지십념과 달리 구족십념은 ‘반드시 열 번의 염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광 스님은 <무량수경>의 ‘信樂(신락)’을 ‘신요’로 읽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스님은 “‘신락’을 범어 원전에서는 ‘Prasada’로 표현하고 있어 ‘정신(淨信)’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말로는 ‘신요(信樂)’라고 읽어야 한다. 번역한다면 ‘믿고자 하며’로 해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