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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티베트의 침묵<법보신문>

글쓴이 : 한보광 날짜 : 2005-09-17 (토) 10:26 조회 : 6350
  티베트의 침묵
 
 
 보 광 스님(동국대 교수)

올 여름에는 성지순례의 길을 티베트로 정하였다. 해마다 중국불적답사를 하는 모임에서는 몇 년 전부터 티베트로 가자는 원력을 세웠으나 선뜻 나서질 못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떠나기로 하였다. 이번 순례에서 필자의 관심은 첫째는 해발 365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에 대한 체력의 적응력 테스트와, 둘째는 신비한 티베트불교에 대한 체험과, 셋째는 중국식민지로서의 티베트 미래에 대한 독립가능성 여부였다.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에서 여행사는 라싸로 가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사항을 당부하였다. 고산지대라 산소결핍증에 걸리기 쉬우므로 약을 먹으라고 하며, 가능한 행동을 느리게 하여 적응하라고 한다.

2시간가량 걸려 라싸에 도착하였으나 처음에는 별 다른 증상이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고산증이 나타나길 시작하였다. 이튼 날이 되자 몇 사람은 입원을 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두 번째의 관심사항이었던 티베트인들의 신심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였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마다 경통이나 염주를 돌면서 “옴마니반메홈”을 지송하고, 길거리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것을 다반사였다. 마침 음력 6월 그믐에 열리는 철방사(哲蚌寺)의 설돈절(雪頓節)의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오전 8시에 봉안되는 가로 30미터 세로 50미터의 자수 괘불은 그 모습이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밤새도록 모여드는 신도들의 행렬은 10만 명이 넘는 인파로 참배객에 밀려가야만 하였다. 이러한 인파 속에서도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벽이면 포탈라궁의 주위를 도는 참배객과 대소사(大昭寺)의 순례객들은 어디를 가도 인산인해였다. 그들의 불심은 세계 어느 나라의 불자도 따를 수 없으며, 말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달라이라마에 대한 존경은 절대적인 것 같았다. 말로서 할 수 없는 마음을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진언을 외우는 것으로 절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번째의 관심사항이었던 중국식민지하에서 티베트의 현재와 미래에 독립 가능성에 대한 것은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문제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포탈라궁에는 스님은 아무도 살지 않으며, 오로지 박물관과 같은 역대 달라이라마의 유물과 경비원들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불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단순한 관광지로 밖에 여기지 않고 있었다. 티베트대학에서는 티베트불교도 폐강시켜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모든 것을 중국화 시키고 있다고 한다.

지금 철도를 놓고 도로를 닦으며, 계발을 서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일행 중에도 티베트의 독립은 불가능하며, 중국의 자치구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잘 사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필자는 화가 나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때에 외국선교사들은 자신의 나라에 보고서를 내기를 조선인이 조선을 다스리는 것보다 일본인이 다스리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하였다.

일본이 와서 철도도 놓고, 도로도 닦았으며, 경제도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제에 아부하여 선교에 많은 이권을 따내기도 하였다. 만약 일제시대에 외국인이 와서 보았다면 오늘날의 티베트와 같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달라이라마를 도망자라고까지 하였다. 달라이라마는 도망자가 아니라 망명자이며,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티베트의 어디를 가든지 염불소리 이외에는 적막만이 감돌뿐이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의 가슴속에는 언젠가는 다가 올 독립의 그 날의 함성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오니 광복 60주년의 기념행사로 떠들썩 했다.


 http://www.beopbo.com/content.asp?news_no=42873

<2005-09-07/818호>
입력일 : 2005-09-07 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