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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염불행자 사발레프 귀화 기사

글쓴이 : 한보광 날짜 : 2009-01-28 (수) 20:01 조회 : 2660
된장냄새 좋아하는 나는야 러시아 염불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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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한 3D 분야 세계 석학 사베리에프 씨
기사등록일 [2009년 01월 19일 13:45 월요일]


러시아 출신 3D 분야 세계 권위자인 사베리에프 씨는 지난해 10월 한국과 불교에 반해 귀화했다. 염불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드는 그는 영락없이 염불행자였다.

50대 러시아 과학자의 양미간에 주름이 졌다. 한국 사람도 잘 못 외우는 애국가를 4절까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적어야 했다. 초조했다. 벌써 귀화 필기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졌다. 절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주던 스님들이 뇌리에 스쳤다. 길게 한 호흡을 들이 마시고 내 쉬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염했다. “나무아미타불….”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힌 후 애국가 가사를 다시 떠올렸고, 귀화 시험을 무사히 마쳤다.

스님에게 한글 과외 받고 시험 통과

지난해 10월 러시아 출신 물리·응용수학자 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55, 청고) 씨가 귀화했다. 3D 분야 세계 권위자인 그가 귀화하자 각종 언론 매체는 앞 다퉈 엘리트의 귀화라는 제목 아래 그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명(佛名) 청고, 정토사, 염불, 명상 등으로 압축되고 생략되는 그의 불연. 거기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심마니가 되고 싶었다. 이야기를 캐러 지난 1월 10일 카메라와 수첩을 챙겨 성남시 수정구 청계산 정토사(주지 보광)로 향했다.

한 바탕 유명세를 치르며 기자들을 상대한 탓인지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러시아 털모자 샤프카(Shapka)를 쓴 흰 턱수염이 매력적인 한국인 사베리에프 씨. 그와 함께 보광 스님을 찾아 뵙고 차를 청했다.

그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렀다. 차담 내내 “어, 어”와 “아, 아”로 말을 시작해 어눌하게 끝냈다. 귀화한 석학이기에 당연히 한국말을 잘하리라는 선입견이 들켜 얼굴이 달아올랐다. 스님이 설명을 곁들였다. 스님의 설명이 맞으면 그는 환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국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하나는 한국 사람들의 푸근한 정과 부드럽고 친근한 강산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빠진 불교에요. 그런데 한국말은 정말 어려워요.”

그는 시베리아 지역의 노보시비르스크 대학에서 물리·응용수학을 전공한 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서 20여 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3차원 영상 디스플레이(3D) 분야를 연구하며, 세계적인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가 연구한 분야는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 3차원의 입체감과 현실감을 가진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국제 유명 저널과 국제 학술회의에서 31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특허도 5건이나 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발간한『세계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쉬울 게 없던 그가 그토록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손정영 교수와의 인연 때문이다. 우연은 운명이 놓아준 다리였다. 그는 손 교수와 교류하며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국인에 매료됐고 3D 연구 환경이 뛰어난 한국에 호감을 느꼈다. 1999년 한국에 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거쳐 한양대 전기정보통신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 하고 있으며 3월이면 연구교수가 된다. 과거 2007년까지 5년 동안 한양대와 삼성전자가 공동으로 추진했던 고실감 3차원 TV 디스플레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귀화에 목을 맨 또다른 이유로는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 준 불교의 영향이 컸다. 손 교수와의 인연은 성남 청계산 정토사로 그를 이끌었고, 이곳에서 그는 염불에 깊이 빠졌다. 보광 스님이 한 마디 거들었다.

매일 염불·108배하며 매사에 감사

“염불을 듣고 만일염불결사에 동참하더니 한국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007년에 추천서를 썼습니다. 허나 두 번이나 낙방해 안타까웠지요. 서툰 한국문화와 언어가 문제였어요. 그래서 스님 둘에게 부탁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한국어와 한국문화 과외를 시켰지요. 얼마 전엔 대한민국 여권이 나왔다며 정토사를 찾아와 어찌나 자랑하던지(웃음)…. 지금은 목탁도 곧잘 치고 염불도 잘하는 어엿한 염불행자입니다.”

그는 2001년 6월 6일 보광 스님을 계사로 오계를 수지하고 청고(淸高)라는 불명을 받았다. 초심을 잃지 말고 염불하며 마음을 청정히 닦아 푸르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라는 스님의 당부이자 채찍이리라.


정토사 주지 보광 스님에게 2001년 6월 받은 수계증을 펼쳐든 사베리에프 씨. 자긍심 가득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그는 불법승 삼보를 믿고 진여견성을 믿으며 인과를 믿고 아미타불과 극락의 존재를 믿는다. 또 베풀고 이웃과 더불어 살며 불법을 호지하면서 살 것을 서원했다. 그리고 아침에 염불하고 저녁에 감사하며 지금도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아미타불을 원불로 30분씩 염불한다. 매월 셋째 주 철야정진에 빠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그에게 불연은 운명이자 껴안고 사랑해야할 대상이 된 것이다.

“염불을 하거나 듣고서 명상을 하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져요. 그러면 마음도 평온해지고…. 아, 스트레스도 사라져 연구에 집중하기도 참 좋아요. 그 순간 벅찬 감동은 안 해본 사람은 말을 마세요.”

그렇게도 좋을까. 염불 얘기만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는 러시아에 한국 사찰을 만들겠다는 발원까지 한 상태다. 일이 점점 커진다 싶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염불과 명상을 러시아 친구들에게 꼭 전할 거라며 웃는다.

구름 속에 시가 있고 바람 속에 음악이 흐르는 나라. 톨스토이와 푸쉬킨, 차이코프스키의 하늘이 있는 나라. 그곳 러시아에서 한국인의 정과 불교가 좋아 귀화한 사베리에프 씨. 설날 정동진에서 본 일출을 잊지 못하고 독한 보드카보다 소주와 막걸리를 좋아하는 그. 아침을 염불로 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닫을 줄 아는 그는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어 가는 염불행자이자 구수한 된장냄새(?)나는 코리안이었다.

성남=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983호 [2009년 01월 19일 13:45]